지나간 주식 차트를 보며 '여기서 샀어야 해', '저기서 팔았어야 해'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당연해 보이는 사후확신편향을 갖게 되니까요. 하지만 주식매매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차트의 가장 오른쪽에서 미래를 모른 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윌리엄 갠의 <차트로 주식 투자하는 법>이 저자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황당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지나간 차트를 보여주며 "이 지점에서 공매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거나 "상승 시그널이 포착되었으므로 매수하기 좋은 자리였다"는 식으로 글을 썼으니 말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저자의 명성은 과하게 부풀려져 있었더군요. 그는 본인의 주장과 달리 트레이딩으로 큰 돈을 벌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트레이딩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조차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는 트레이더라기보다는 정보에 목이 마른 대중을 상대로 책이나 강좌 따위를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강좌의 가격이 현재 우리 돈으로 수천만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를 폄훼하거나 책 전체를 하찮은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본인은 사시에 패스하지 못 했지만 사법고시를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것처럼 자신은 트레이딩으로 돈을 벌지 못 했지만 실전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의 글을 읽어보면 실제로 저자가 트레이딩과 관련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주식시장과 트레이딩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죠. 다만 본인은 트레이딩으로 돈을 벌기에 실천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차트로 주식 투자하는 법>을 읽으며 놀랐던 건 100여 년 전에 쓰인 책이 오늘날에도 꼭 들어맞는다는 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정보를 갈구합니다.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누군가가 종목을 콕 집어주기를 바라죠. 그렇게 남의 말을 듣고 덜컥 주식을 매수합니다. 그러고는 조금만 주가가 오르면 홀랑 팔아버리고 조금만 주가가 내려도 안절부절하지 못 하며 손절을 주저합니다. 고점에 사서 물리고 저점에서 손절하는 개미의 패턴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술적 분석조차도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의미합니다. 저항과 지지는 결코 허무맹랑한 개념이 아니며, 거래량은 예나 지금이나 주가의 그림자 역할을 합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그건 아마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성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희망, 두려움, 탐욕이 그것이죠. 이 세 가지를 지닌 인간은 시간이 흘러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기 위해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인 것이죠.


인간이 만들어내는 시장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처럼 우리 모두에게서 누군가가 감정이라는 요소를 떼어가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장이 변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기우입니다. 만약 시장이 변해서 주식시장에서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 할 것이 걱정된다면 아마도 그건 여러분의 매매 방식이 통시적인 시장의 원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 특수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시장의 커다란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원리에서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툴을 개발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그게 바로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디테일의 차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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